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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마사다] 2010.03_마사다,사해,쿰란
    ■ Europe /24 Israel . 2015. 9. 17. 17:23

    2010.03 중동 출장


     

     

     비운의 절벽요새, 마사다(Massada)

     

     masada

     

    마사다(masada)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으로 사해의 서쪽 해변에 위치하고 있다. 주위의 유대 광야의 산들과는 고립된 높이 400여m의 이 천혜의 절벽 요새는 정상이 길이 600M, 가장 넓은 곳이 폭이 250M인 평지를 이루고 있다.  이 곳은 서기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Josephus)가 기록한 "유대 전쟁사"를 통하여 마사다가 헤롯왕의 요새인 동시에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했던 "유대 전쟁(Jewish War)" 최후의 비극의 격전지였음이 알려지게 되었다.  서기 66년부터 시작된 이 반란이 로마의 월등한 군사력으로 서기 70년 예루살렘의 함락과 더불어 성전의 파괴로 끝을 맺게 되자 이에 굴복하지 않은 960명의 "열심당원"이라 불리는 극우파 민족주의자들은 이미 66년에 당시 소수의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던 마사다를 점령하며 저장된 물과 식량, 무기를 이용, 로마에 대항하였다. 

    예루살렘을 이미 점령하여 유대인 반란의 진압을 이미 달성한 로마의 총사령관 티투스(Titus)는 장차 아라비아 광야 지역으로의 진출을 예상한 광야 전투의 훈련을 목적으로 실바(Silva) 장군으로 하여금 10군단을 이끌고 이곳에 대한 대규모의 포위 작전을 실시하게 하였다. 로마군은 2년에 걸친 무수한 정상 공격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요새 꼭대기의 견고한 성벽을 파괴시키기 위한 공성퇴(Battening Ram)를 끌고 올라갈 수 있는 거대한 경사로를 6개월에 걸쳐서 축조하였다.  유대인들의 격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공성퇴가 성벽을 무너뜨리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이면 로마군이 성벽이 파괴된 곳으로 진격해 올 바로 그날밤에 유대인들의 지도자 엘리에제르 벤 야이르(Eliezer ben Yair)는 모두를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은 요지의 연설을 하였다. "내일 아침 로마 군에 잡혀서 온갖 수모를 겪느니 차라리 오늘 밤에 우리가 스스로 자유스럽게 영광의 죽음을 선택 합시다." 

    이 말에 감동한 각 가족의 가장들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칼로 찔러 죽인 다음 남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열명을 추첨하여 그 열명이 나머지 남자들을 죽였고 남은 열명이 한명을 추첨하여 아홉 명을 죽인 후 그도 최후로 자결하였다. 3년 동안의 한 맺힌 포위 작전에 대한 영광의 대가를 바랬던 로마군인들은 960구의 시체 앞에 망연자실하였다.  이 비극의 전설은 오늘날까지 승화되어 마사다는 현재 이스라엘 군 장병들의 선서식장으로 활용되고, 이곳에서 그들은 "Never Again!"을 외치면서 1948년에 독립한 이스라엘이 다시는 외적에 의해 정복당할 수 없다는 비장의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   

     

     

    마사다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면서 찍은 건데, 무지무지하게 높다 ! 저~ 밑에 케이블카 타고올라온 곳이 너무 작게 보이지?

     

    400미터나 높은 이 절벽에 요새 짓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듯 싶다.. 

     

     

    케이블카 타고 내려서 이 구름다리 같은 절벽 옆의 무시무시한 다리를 걸어서 사진 중앙에 작은 문이 입구 ! 

     

     

    정상(?) 에 도착해서, 저 멀리 보이는 광야와 사해 

     

     

    메마른 땅 위의 천연요새. 날씨가 참~ 좋았다 :)   - 하긴 대부분의 중동은 우기(겨울)가 아니고서야 거의 이런 날씨라지만 ㅋ

     

    그래도 요샌 지구가 아파서 종종 이상기온현상에 의해서 비가 오기도 하고.. 중동스럽지 않은 날씨가 자주 나타난다..

     

     

    마사다 위에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첫번째 천막 아래에 마사다 전체 모양을 볼 수 있는 곳!

     

     

    당시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이 모형으로도, 흔적도 남아 있어서 들어가보았다 :) 

     

     

    여긴 목욕탕 (여기도 은근 사우나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좀 놀랬다)

     

     

        염도가 높아 생물이 살지 못하며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해 (The Dead Sea)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35㎞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사해는 그 수면이 주변의 지중해보다 398m나 낮아 지구 표면에서 가장 움푹 들어간 곳으로, 그 남북 길이가 75㎞이고 동서 폭은 긴 곳이 17㎞이며, 둘레는 200㎞에 이르는 규모가 꽤나 큰 "갇힌 바다"이다. 

    사해의 바닷물 염도는 무려 33% 정도로 일반 바닷물보다 5~6배나 높아서 누구라도 물에 들어가면 수영을 하지 않아도 가라앉지 않고 뜨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인체에 유익한 각종 광물질을 다량으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치료를 위해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여왕이었던 클레오파트라도 미용을 위해 노예들을 시켜 정기적으로 사해의 검은 진흙을 가져오게 했다고 전해질만큼 이 곳 진흙의 미용효과는 고대부터 알려져 있다. 


    자료출처 :  하나투어닷컴



     

     사해는 티벳의 얼음폭포와 알제리의 모래바다에 이어 세번째 <자연현상에 관한 세계 7대 불가사의> 로 선정되었다 하며, 

    네번째로는 남극의 파도얼음, 다섯번째 하와이의 불의 호수, 여섯번째 노르웨이의 밤의 태양, 마지막으로 북아메리카의 화석목이 있다.

     


    또 참고로, 스위스 비영리재단 '뉴세븐원더스(The New7wonders)'가 주관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하나더 있는데, 

    2007년부터 진행해온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은 문화유산인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이어 지구를 대표할 수 있는 자연유산을 뽑는 작업이다. 

    처음 440곳이 후보로 올랐는데, 우리나라의 제주도를 포함하여, 갈라파고스섬(에콰도르), 그랜드캐년(미국), 아마존(브라질), 사해(이스라엘), 몰디브섬(몰디브) 등 28곳이 최종 후보지로 압축되었고, 전화, 문자메세지,인터넷 투표를 합산해 오는 2011년 11월 11일 7곳을 최종 발표한다고 한다 :)

     

     

     

     

     이천년전의 사해구약사본이 발견된 곳, 쿰란(Qumran)

     

     

    사해의 북서쪽에 있는 쿰란은 사해 사본(the Dead Sea Scrolls)을 기록한 에세네파 사람들의 주거지역이 있었던 곳이다. 

    이 지역의 발견은 1951-1956년에 이루어졌는데, 폐허 속의 주건물은 폭 27m 길이 44m정도로, 석고가 거칠게 발라져 있는 거대한 규모의 돌로 만들어진 것이다. 북쪽에는 수비탑이 있으며 부엌과 붙어있는 식당에서는 1,000여점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주건물 주변에는 옹기장이집, 방앗간, 염색집, 7개의 저수탱크 등이 발견되었으며, 의자, 책상, 말라버린 잉크가 담겨진 잉크스탠드가 있는 기록실이 발견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쿰란 주변의 11개 동굴에서 발견된 800여개의 사해 사본들 가운데 두루마리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개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는 수없이 많은 조각들로 발굴되었다. 이들 중 약 1/4이 구약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 주석, 신학서, 쿰란 공동체의 규율집으로서, 대부분 양피가죽이나 파피루스 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놓은 것들이다. 

    약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해구약 사본 현존하는 구약 사본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에스더서만을 제외하고는 구약의 모든 책들이 전부 포함되어 있다.   

     

    + 

     

    에세네파 _ 이 사람들은 공동생활을 하며, 아주아주 엄격한 계율에 따라 금욕생활에 기도, 말씀을 읽고 쓰는 일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었던 세례 요한도 한때 이 파 소속이었다고 한다.

     

     

    저기 보이는 구멍이 사해 사본이 발견되었다고 추정되는 동굴 입구 ~

     

    1947년 양치기 소년이 잃어버린 양을 찾다가 우연히 이 동굴을 발견하게 되었고, 

    여기서 성경의 필사본이 담긴 항아리 8개를 발견하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이 후로 주변 동굴 30여개를 뒤져보니 900여 개의 두루마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아직도 당시의 유적이 남아있으며, 한창 복원 중이다. 지금 이스라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이스라엘 가게 되면 거의 유일하게 쇼핑을 할만한 곳이 이 곳 쇼핑센터로 사해제품들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사해 사본은 작년에 우리나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도 전시회가 열렸었다.

     

     

    쇼핑센터&식당 바로 옆에 쿰란에 관련된 영상을 보려고 대기 중.  

     

    이런 파노라마로 된 영상을 보게 되는데, 사해사본 발견하는 과정과 에세네파의 생활양식을 짧게나마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사용하였다는 토기

     

     

    당시 사람들을 그린 그림

     

     

    +

     

    이스라엘에 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이스라엘관광청 한국어 번역 홈페이지로 ~

    http://www.goisrael.kr/tourism_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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