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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키/소아시아7대교회]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서머나교회.빌라델피아교회
    ■ Europe /21 Turkey . 2014. 2. 15. 03:45


     

    ◈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버가모 교회  (현 베르가마)

    ...나는 네가 어디에 거주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 곳은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너는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또 내 신실한 증인인 안디바가 너희 곁, 곧 사탄이 살고 있는 그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네게 몇 가지 나무랄 것이 있다. 너희 가운데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발람은 발락을 시켜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 올무를 놓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하고, 음란한 일을 하게 한 자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그러니 회개 하여라.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속히 너에게로 가서, 내 입에서 나오는 칼을 가지고 그들과 싸우겠다. 
    <계2:13-16>

    성경의 한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버가모에는 넓이 30㎡ 높이 12㎡에 이르는 거대한 제단이 있는 제우스신전을 주축으로 디오니소스,아스클레피오스,아테네등 4대 신전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었으며 로마시대에는 로마황제를 숭배하는 신전까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버가모에서의 포교활동은 많은 곤란이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시기에는 핍박으로 인한 종교적 순결을 지킬 수 있었다.

    버가모 교회가 세속화의 길을 걷게되는 시기는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내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부터이다. 이에 소아시아의 7대 교회 중의 하나인 버가모 교회는 하나님에게 세속화에 대한 경고를 듣게 된다. 하지만 안디바의 순교와 신자들의 믿음으로 버가모 교회는 많은 유혹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 종교적 정절을 지켜 현대에 이르기까지 본받고 경고로 삼을 교회로 칭송받고 있다.

    현재 많은 순례객들이 찾고 있는 붉은 바실리크(붉은 교회)라고도 불리는 버가모 교회는 교회로 사용되기 이전에는 이집트의 신 세라피스를 위한 신전이었다.

     

      

     

       

     


     

     

     

     다른 곳으로 옮기기 전에,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재래시장이 열렸길래, '세워주세요 :)' 해서 들른 곳

       


     

     

     

    ◈ 버가모와 사데를 잇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에 위치했던 두아디라 교회 <Thyatira>

     

     두아디라(Thyatira)는 이즈미르에서 북동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현재는 Akhisar라 불린다. 두아디라는 알렉산더의 대장 중 한 사람이었으며 나중에 페르가문의 지배자가 되는 셀레우코스 니카도르(Selucus Nicator)가 B.C. 3세기경 도시를 재 건립하기까지는 대수롭지 않은 곳이었다. 이 도시는 군사도시로 성채도시였다. 평지에 있어 방어하기가 어려운 도시였지만 지정학적 위치상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건립할 때의 군사적인 목적은 서서히 잊혀져 갔으며 도시는 상업적인 성격을 강하게 띄어갔다.
    두아디라에는 많은 장인길드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양복길드, 목수길드,도공길드,제빵기술자들의 길드 등등 모든 분야의 숙련된 노동자들은 길드의 회원이었다. 이런 상업적인 길드들은 기독교도들이 이교라 부르는 종료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은 아폴론(Apollo)이었다. 지금도 도시의 한편에 아폴론 신전 유적지가 있다.

    그래서 아래의 요한 계시록에서 보이 듯이 예수님은 이단의 득세와 교인들의 변절을 질책하였다.계시록에서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로 보아 예수님은 신자들의 종교적 순결을 질책하신 듯하다.그리고 아래 계시록에서 예수님을 지칭하는 "...빛난 주석같은 하나님의 아들"에서 빛난 주석은 두아디라가 주석(錫) 산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현재 두아디라에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한 아폴론 신전과 비잔틴 시대의 교회터에 남아 있는 커다란 기둥들만이 있다.

    <계 2:18~29>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덜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자료출처 : 하나투어닷컴 WWW.HANATOUR.COM

       

      

       

     

       

     

     

     

     


     

     

       

    ◈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받은 서머나 교회 (현 폴리캅 기념교회)

     

    소아시아 7대교회 "폴리캅 기념교회(서머나 교회)"“성령의 불멸성 안에서 영과 육이 다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기 위하여 순교자의 반열과 그리스도의 잔에 참여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이로 인하여 나는 모든 것을 찬양하나이다 ”
    폴리캅이 순교하기 직전에 한 기도문이다.  이 폴리캅 기념교회(서머나 교회)는 AD 156년 경에 순교한 사도 바울의 직전 제자이자 서버나 교회의 초대감독이었던 폴리캅을 기리기위해 17세기에 지어진 교회이다.

    과거에 이즈밀은 서머나로 불려졌으며 교역의 중심지로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명에 의해 서머나로 파견되어 온 폴리캅은 유대인들에게 많은 박해를 받으며 교회를 일으켰다. 그러다 AD 156년 경부터 황제숭배와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서머나 (현재 이즈밀)의 원형경기장에서는 야수들의 이빨에 11명의 기독교인들이 순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이 때 폴리갑도 잡혀 많은 회유를 당했으나.끝내 신앙의 순결을 지키며 순교하여 서머나 교회(현 폴리갑 기념교회)는 성서에서 칭송받는 교회가 된다. 현재 폴리캅 기념교회는 이즈밀 시내 중심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 교회는 외관은 단순하고 검약해 보이지만 내부는 채색된 성화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보는 이들에게 장엄함을 느끼게 한다.

     

       

     

    서머나교회 (폴리캅순교기념교회) 는 내부 입장할 수 없는 날도 많다. 미사 중이거나, 문이 잠겨있으면... ㅠ

     

       

     

    아름다운 이즈밀의 해안가.... 해가 지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여기엔 터키 국내선, 몇몇 국제선이 취항 중인 공항이 있으며, 해안가라서 물가도 비싸다 +_+

     

     

     

     


     

     

     

    ◈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충성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빌라델피아 교회

     빌라델비아(PHILADELPHIA) 교회

    빌라델비아(PHILADELPHIA)는 이즈미르에서 동쪽으로 130KM정도에 떨어진 위치에 있다. 빌라델비아는 "형제의 사랑"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Pergamum(159-138 BC)의 Attalos II Philadelphos에 의해 세워졌다. 도시 이름은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B.C 481년에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Xerxes는 그리스에 가는 길에 사데쪽으로 여행을 했었었다. 이를 기억한 알탈로스 2세는 동쪽으로 진출하여 프리지아(Phrygia)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 곳에 도시를 세웠다.이 도시의 위치는 매우 절묘하다.페르시아의 왕도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언덕과 Hermuz와 Meander(Menderes)라 불리는 중요한 골짜기 위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는 AD 17년에 있었던 대지진으로 폐허로 변했다. 그래서 현재도 별다른 유적이 남아있지 않으며 주변에 이미 현대적인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발굴도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이 곳은 성경에 나오는 소아시아 7대 교회 중 하나인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비잔틴 시대에 벽돌을 재료료 해서 지어진 건물로 6개의 기둥이 있는 직사각형의 건물이었다. 이 6개의 기둥 중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것은 단 3개의 기둥이다.4번째 기둥은 땅에 반이 파묻혀 있으며 가장 서쪽의 기둥은 근처에 지어진 현대건물의 아래에 있다. 기둥 위에는 11세기에 그려진 그림을 어렵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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